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중동전쟁 (문단 편집) == 여담 == 이스라엘 건국전쟁 기간 동안 이스라엘군은 소련의 동의로 [[군수품]]을 수출하는 계약이 성사된 [[체코슬로바키아 제3공화국|체코슬로바키아]]에서 받은 [[독일]]제 무기로 무장하고 싸웠고, 아랍 연합군은 [[영국군]]이 남기고 간 대량의 영국제 무기로 싸우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했다. 특히 이스라엘이 쓴 독일제 무기는 상당 부분이 체코에서 생산한 물량이었고, 독립 초기 이스라엘을 중동의 반서방 거점(다른 중동국가가 다 친영미 계열이던 시절이니)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소련이 체코에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공급을 지시했기 때문에 [[프라하]] 공항에서 한동안 이스라엘행 무기 수송기만 이륙하던 때도 있었다. 이스라엘군이 보유했던 [[Bf 109#s-2.10.1.|메서슈미트]]도 실은 독일제 오리지널이 아니라 체코제인 아비아 S199였고,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UZI|우지 기관단총]]도 그 원형은 체코제의 [[Vz.23|Vz.25]] 기관단총이다. 심지어 이스라엘은 체코가 보유하고 있던 [[Kar98k]] 소총 생산시설을 통째로 구입해서 Kar-98K를 생산, 한동안 [[제식 소총]]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전후 이스라엘은 빠르게 친미 노선으로 갈아탔기 때문에 [[이오시프 스탈린]]은 격노하여 책임자들을 숙청했으며 소련 내부의 유대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감행했다. 이로 인하여 반파시즘유대인위원회 위원장 솔로몬 미호옐스가 암살되었으며 [[뱌체슬라프 몰로토프]]의 부인인 폴리나 젬추지나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몰로토프에게 [[이혼]]당하고 체포당했다. 소련의 유대인 탄압은 크렘린 의사 음모 사건으로 절정에 이르렀으나 1953년 스탈린이 급사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쇼샤]] 기관총이 공식적으로 투입된 마지막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쟁에서 시리아군이 쇼샤를 운용한 것이 쇼샤가 공식적으로 운용된 마지막 기록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운용되었다는 비공식 정보도 있으나 이는 불확실하다. 이스라엘 점령군에 의한 학살과 아랍인 추방이 자행되었는데, 이는 이스라엘 정부의 공식적 입장은 아니었고 일선 지휘관들의 독단 행동이었다. 당시 잔류한 아랍인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헌법개정을 통해 시민권이 부여되었다. 기존의 통설은 이스라엘 정부의 조직적 아랍인 추방은 없었다는 것이었지만 어느 정도 조장, 묵인한 정황이 있다는 새로운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일부 학살이 벌어진 것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은 아랍인들이 이를 믿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피난을 떠나는 일도 벌어졌다. 재밌는 것은 이스라엘 학계는 차차 이스라엘 정부에 비판적인 반면 아랍 쪽에 동정적으로, 팔레스타인 학계는 이스라엘 정부의 동기를 이해하는 면모로 서로 바뀌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